50대의 아버지는, 이 한마디가 인간관계의 진리라고 말씀하셨고, 스물 다섯의 아들은 이제 어렴풋이 그 말 뜻을 알아가게 되었다. 멀리도, 가까이도 하지 말라는 말 안에는 '멀리''가까이'가 가지는 속 뜻이 또 숨어있다는 것을 조금 알게 되었고, 어째서 그것이 오직 하나의 진리인지에 대해서는 충분히 경험하지는 못했지만 말이다.


  세상엔 단 한 사람도 100% 좋은 사람이거나 100% 나쁜 사람은 없다. 내가 어떤 사람들에 대해 가지는 좋지 않은 점은 다른 사람들에게는 좋은 점일 수도 있다. 내가 보는 어떤 사람의 좋은 점은 다른 사람들에게는 좋지 않은 점일 수도 있다. 나는 둘 다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그 둘 사이는 더 이상 나빠질 수 없을 정도의 사이인 경우를 종종 목격하게 된다. 나에게는 좋은 면만 보이던 두 사람이 서로에게는 좋지 못한 면을 보이기 때문이리라. 모든 것은 상대적이라는 진리가 인간관계에서 더욱 빛을 발하는 순간이다.


  나와 같다고 생각한 사람에게서 내가 싫어하는 그의 다른 면을 발견하게 되는 순간만큼 당혹스러운 것은 없다. 20년지기 친구가 어느날 빚보증을 서달래놓고 도망가 평생 번 것을 까먹어버린 사람이 수 없이 많이 있을 것이다. 수십 건에 달하는 강도 강간을 저지른 사람이 집에서는 더없이 자상하고 따스한 아버지였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기도 한다.


 이러한, 사람이 가지고 있는 여러 면면을 한마디로 설명할 수도 없고 한 덩어리로 묶을 수도 없다. 60억의 인구, 60억개의 성격과 인성, 그리고 그들이 서로 맺고 있는 수 만큼의 인간관계의 독특함이 존재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는 서로를 가까이 두고 싶어 친구가 되거나 서로를 멀리하고 싶어 적이 되는 것이 가장 보편적이고 일반적인 인간관계 일 것이다. 그러나 멀리도, 가까이도 하지 말라는 것이 인간관계에서 가장 절대적인 하나의 진리라는 것이 너무도 아이러니컬 하다.


   불가근, 불가원의 단계는 좋고, 싫고, 멀고, 가깝고를 초월한 무심(無心)한 것이다. 관심이 없는 무관심이 아니라, 인연은 인연임을 알되 거기에 마음을 쓰지 않는, 마음이 오가지 않는 경지인 듯하다. 원근호오(遠近好惡)는 사람의 욕심에서 비롯된 것이고 욕심은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다. 사람을 사귀되 마음을 쓰지 않는다면 그가 좋고 싫고 한 것과 상관없이 물 흐르듯 자연스레 인연이 오고갈 수 있을 것이다.


  마음을 쓰지 않는다는 것은 그 사람에게 진심을 다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님은 알 수 있을 것이다. 그 마음()이란 그 사람을 내가 좋아하고 싫어하는 마음이다. 세상 살면서 어찌 좋고 싫은게 없겠는가. 좋고 싫음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을 정도만 되어도 처세에 능하다는 소리를 들을텐데 마음이 좋고 싫음에 움직이지 않을 정도면 가히 처세의 신()이라 불러도 좋을 듯 싶다. 그래서 많은 어른들께서 불가근 불가원에 대해서는 어찌 설명할 도리가 없고 다만 살아봐야 그 뜻을 깨닫게 될 것이라고 하셨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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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제나 스스로가 다다르지 못한 채로 글을 쓰니 뜻도, 뜻을 해석함도, 그것을 글로 써 내려감도 부족하기만 하다. 젊은 시절에 글을 썼으나 나이가 들고 나서 다 말장난, 깨작거린 문장인 것 같아 써둔 글을 다 잊으셨다는 아버지의 말이 귀에 맴돈다. 글을 잘 쓰고 못 쓰고는 기()에 관한 것이고 그 의()에 관한 것은 아닐 것이다. 불가근, 불가원에 대해 글을 아무리 잘 써도 조용히 몸소 실천함만 못할 것이다. 내 글에 내가 반만이라도 따라갈 수 있다면 좋으련만. 매일 내 글을 놓고 잘 썼다 못 썼다 탓하는 어리석은 내 마음은 아직도 서투른 내 관계맺음을 좀 더 낫게 하기에는 여전히 부족하다. 아무리 뛰어나지더라도 부족한 면이 없을 수는 없을테지만, 그것이 불가근, 불가원을 실천하지 못하는 부족함만은 아니었으면 좋으련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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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 다섯에서 스물 아홉이 되도록 나는 이보다 더 나은 글을 적지 못하고 있다.

 

-玄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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